2007년 12월 28일
새 정권의 ‘묻지마 인사’…다시 오는가, 편법의 시대
그가 중책을 맡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여론은 들끓었다. 이 총장의 전력 때문이다. 그는 80년대 국보위 입법위원을 역임했다. 또한 민정당 전국구 의원도 지냈다.
신군부에 협조한 것이다. 이 당선자 진영에서 문제가 제기됐다. 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. 이 당선자의 의지가 확고했던 탓이다. 그는 ‘그 정도 흠없는 인물이 있겠느냐’며 이경숙 카드를 밀어붙였다고 한다. 소위 ‘이명박 실용주의’의 단면이다.
그것이 무엇이든 과거는 묻지 말란다. 능력만 있으면 된단다.
인사의 고유권한은 이 당선자에게 있다. 따라서 관련 논란은 자제돼야 한다. 하지만 그게 국가지도자의 역사의식이 부재함을 드러낸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.
그간 이 당선자는 잦은 말실수로 인해 수차례 구설에 올랐다.
도산을 안창호씨로 둔갑시킨 건 애교에 속한다.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격하시켜 물의를 빚었다. 부마항쟁도 마찬가지다. 민주화운동 세력은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로 치부했다. 일해, 그러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두고서는 농을 하기도 했다.
횟집 이름이 아니냐는 그의 발언은 실소를 자아냈다. 이 총장의 등장은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.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인수위원장 인선을 놓고 여전히 얼굴을 구긴다.
우리 사회는 흔히 발전의 척도로 부의 증대를 언급한다. 이 당선자의 진영은 특히 더 그렇다. 경제살리기를 약속하고 정권을 잡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터이다.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. 물질적 풍요로 다음 정부의 모든 걸 평가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.
이 당선자는 대선 직후 선진화를 지향하겠다고 했다. 재임 중 국민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여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얘기다. 그다운 발언이다.
하지만 그의 공약이 지켜진다고 선진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. 진정한 선진화의 핵심은 사회적 자본이다.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정직과 신뢰,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 대표적인 예다. 헌데 우리에게는 이 사회적 자본이 결핍돼있다. 아주 심각할 정도다.
특히 신뢰가 그렇다. 바르게 산 대가를, 아주 정직하게 얻을 수 있다는 믿음, 그간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과 부패는 이 믿음을 배반했다. 우리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. 대의를 위해 싸웠던 이들의 말로는 처참했던 반면, 소아에 집착했던 이들의 말로는 화려했다. 이에 현 집권세력은 과거사를 정리했다. 이 작업에 피로를 느끼는 국민이 생겨났다. 허나 그 노력은 10년간 계속됐다. 그 결과 세상은 바뀌었다. 공동의 규칙을 무시하거나 반칙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. 만인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싹트게 된 터다.
그런데 이 당선자는 갓 회복된 이 신뢰의 싹을 무참히 잘라내려고 한다. 그것도 ‘묻지마 인사’를 통해서 말이다. 중대한 역사적 과오를 ‘그 정도’로 치부하는 그의 넓은 아량에 어쩌면 편법과 부정에 익숙했던 이들의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를 일이다.
이것이 이 당선자를 지지한 민심을 위한 길일까? 문득 의문이 생긴다. 대통령 당선 직후에 그가 내뱉은 “국민을 잘 섬기겠다”는 약속을 자꾸만 되새기게 된다.
최한성 (marunnamu01@dailyseop.com) 기자if(document.getElementById("news_content") && txtSize){document.getElementById("news_content").style.fontSize=txtSize;}
# by | 2007/12/28 09:44 | C : 한국사회문화 | 트랙백 | 덧글(1)



닌 선진국 기업의 요구에 따라 생산자들이 경쟁적으로 원료와 상품, 노동력을 헐값에 넘기기 때문이다.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물건을 넘기게 되는 농민은 손해 본 금액만큼 더 벌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, 결국 이들은 일을 계속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.




